읽고 있는 책들

고등 국어-시읽기

싸리나무 2018. 5. 27. 12:46

누나가 읽기 위해서 책상위에 두었던 책을 아들과 먼저 읽게 되었다.
"시"란 사람의 마음을 참 되짚어서 살펴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시를 읽음으로써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내용,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은 물론,

그 시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자아성찰'의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

그저 이론적으로만 배웠었던 시가 가진 힘...

어쨌건 함축적인 시어들이

과거도 되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돌을 던진다.

아들은 어떤 느낌들을 받았으려나?....

 

 

 

 

 

 

 

 

 

 

이 책의 첫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다.

"이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네. 소월 김정식"

너무나 널리 알려진 시, 간결하면서도 수십번을 반복해서 읊조려봐도

지겹겨나 지루하지 않은 시.

 

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번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신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나희덕의 '귀뚜라미'라는 시를 읽고는

예전에 엄마가 젊은시절 들었던

안치환의 노래를 즉석해서 들려주었다.

사실 안치환의 노래를 먼저 알고나서

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귀뚜라미(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때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엄마가 또 좋아하는 시인이야... 백석"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흰 바람벽이 있어'...

 

흰 바람벽이 있어(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영 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집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읽고는 '민주주의여 만세'가 생각나는

안치환이 부른 노래를 들려주었다.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기형도(엄마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앞드려 출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아들은 윤동주의 '자화상'과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를 인상깊게 읽은 듯 하다.

 

자화상(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록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발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고래를 위하여(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아들과 우연히 읽은 이 시집 한 권에서 참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났다.

 

덕분에 1주일정도는 밤마다 시를 읽으며 과거를 회상해보고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도 고래와 바다가 있겠지. 언제쯤 그 바다와 고래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나도 지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우주인'에서 벗어나야 할지 고민이다..."